
※직접적인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했지만, 작품에 관한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다분히 주관적인 감상에 불과하니 참고 바랍니다.

이 글은 세련된 비평이 아니다. 일개 개인이 관람 당시 온몸으로 두들겨 맞은 기록일 뿐이다. 미장센이나 계급 구조 같은 해석은 접어두고 싶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걸 발견할 능력이 없었다. 누가 뒤늦게 설명해줬을 때 "아, 그런 거였어?" 하고 깜짝 놀랐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그때 느꼈던 감각이 무엇인지, 이토록 기분 더럽게 만드는 영화는 대체 어떤 영화인지 몇 번이고 다시 뜯어볼 용기가 생겼다.
영화를 보며
친구 집 거실에 모여 앉아 이 영화를 보던 기억이 난다. 다 본 뒤 내 첫 마디는 "아, 진짜 개찝찝하네."였다. 다들 명작이라 칭송했지만, 나에게는 2점조차 아까운 작품이었다. 옆에 놈은 재밌지 않았냐며 들떠서 물어봤지만, 솔직히 뭐라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집에 오니 누나가 영화 어땠냐고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부터 저었다.
"이거 보지 마ㅋㅋ 진짜 기분 개잡친다."
평소 같았으면 '나만 당할 수 없지'라며, 동거인 킹받게 할 목적으로 무조건 보라고 등 떠밀었을 거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농담조차 나오지 않는 진심 어린 경고였다.
그날 이후 며칠 간, 덜 마른 빨래 냄새가 코 끝에 환각처럼 고여 있었다.
현실이 어긋나는 감각
그것은 꿈속에서 사람을 죽였을 때의 느낌과 닮아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되돌릴 방법은 전무하며, 인생이 속절없이 어긋나버렸다는 감각만이 비정상적으로 또렷하게 뇌를 장악하는 상태. 비현실인 꿈조차 이토록 선뜩한데, 기생충은 그 해상도 높은 지옥을 현실 스크린 위에 끝까지 붙들어 둔다. 관객이 눈 돌릴 틈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안전거리를 허용하지 않는 가학성
<올드보이>가 브라운관 너머에 박제된 고통을 전시하며 '타인의 비극'이라는 안전거리를 허용한다면, <기생충>은 기어이 선을 넘어, 비릿한 칼날을 관객에게 직접 들이민다.
작품과 나 사이에 존재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거리, 그 '허구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 현실 감각까지 같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기생충>이 선사하는 불쾌함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봉준호가 치밀하게 계산해낸 지옥이다. 무너지지는 않을 만큼의 선에서 심리적 압박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뒤늦게 깨달았다. 한 치도 비켜가지 않은 설계였다는 걸.
작품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물이 불쾌함일 때가 있다.
외면하고 싶은 축축한 지하실 바닥에 우리 얼굴을 처박고,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시궁창내 나고 더러운지 끝내 확인하게 만드는 것. 머리로는 실감되지 않던 균열을 체험케 하는 것. 그 또한 예술의 책무일 테니까.
치유와 공격, 그 극단의 설계
같은 현실을 다루면서도 정반대로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나의 아저씨>: 낡은 가로등 아래서 기어이 곁을 내어주는 구원.
<기생충>: 높은 담장 위로 기어이 불안을 흘려내는 침입.
하나는 현실을 살아내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어느 쪽도 쉽게 버릴 수 없다.
과거 2점은 이제 9.5점이 되었다. 0.5점을 끝내 비워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전히, 간신히 견딜 만큼 불쾌해서.
(솔직히 말하면 그냥 너무해서 0.5점은 더 못 주겠다ㅠㅠ)
한 줄 평: "봉준호는 돌팔이다. 아름다운 수석을 파는 척하고 그걸로 사람 머리를 내려친다."
내 점수: 9.5/10
취향 배제 시: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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